건강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의 발견은?

까꿍또복 2024. 2. 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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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의 발견은 스코틀랜드의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 경 덕분입니다. 그 발견은 1928년 9월 플레밍이 박테리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런던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일어났습니다.

플레밍이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자신의 실험실로 돌아와 보니 작업대 위에 포도상구균이 들어 있는 페트리 접시 몇 개가 방치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접시 중 한 개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는데 플레밍은 곰팡이를 둘러싸고 있는 박테리아가 사멸하는 것처럼 보여 명확한 구역을 만드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곰팡이를 페니실리움의 변종으로 확인하고 포도상구균에 대한 항균 효과에 주목했습니다.

1929년 플레밍은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항균 물질이 치료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페니실린의 발견에 대한 초기의 흥분은 그 물질을 충분히 생산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 도전들로 인해 다소 누그러졌습니다.

페니실린이 의료용으로 실용적인 항생제로 성공적으로 개발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과학자 하워드 플로리,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 노먼 히틀리는 페니실린을 대규모로 생산하고 정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페니실린을 널리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페니실린은 의학에 혁명을 일으켰고 세균 감염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플레밍, 플로리, 체인은 페니실린의 개발과 사용에 기여한 공로로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플레밍에 대해서 알아볼께요

알렉산더 플레밍 경(영어: Sir Alexander Fleming, FRS1881년 8월 6일 ~ 1955년 3월 11일)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생명공학자이며, 세균학자이다. 대표 업적은 항균물질 리소자임과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후에 항생제 분야 발전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에 대한 업적으로 플레밍은 1945년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하워드 플로리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1]

플레밍은 스코틀랜드 에어셔 지방의 로흐필드 출신으로 킬마르녹의 리젠트 공예학교에서 2년간 교육받았다. 그리고 상선회사에서 4년간 일한 후에 런던 대학교 세인트 메어리즈 병원 의과대학(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 입학하여 졸업 후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병원이 파괴될 때까지 의학교 소속으로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그는 많은 동료들처럼 프랑스의 야전병원에서 복무하였다. 전쟁 후에는 세인트 메어리즈 병원 의학교에 복귀하여 감염병 치료를 개선시킬 수 있는 세균학 및 면역학 분야를 연구하였다.

알렉산더 플레밍의 대표적인 연구 업적에는 리소자임과 페니실린이 있다. 이 두 가지는 1920년대에 우연적으로 발견되었다. 리소자임은 1922년 플레밍이 제1차 세계 대전 중 부상병들이 세균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죽어가는 것에 대한 연구를 하던 도중에 우연적으로 발견 · 분리되었으며, 페니실린은 1928년 포도상구균 배지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우연히 배양기에 발생한 푸른곰팡이 주위가 무균 상태라는 사실을 통해 발견되었다.[2]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푸른곰팡이의 배양물을 800배로 묽게 하여도 포도상구균의 증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우연적인 발견을 과학사에서는 세런디피티라고 한다. 플레밍의 리소자임과 페니실린 발견은 세런디피티의 대표적인 예로, 때때로 이러한 우연적인 발견은 과학의 발전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55년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였다.